퇴근길 운전 중에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습니다.
쓰고 있으면 어지럽고, 벗으면 눈이 초점을 잡으려고 애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쪽도 편하지 않아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안경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나는 2007년부터 안경사로 일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안경 도수는 매일 확인하면서 정작 내 안경은 거의 10년째 비슷한 도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불편을 겪으면서도 시력검사부터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운전할 때 시작된 낯선 불편
처음에는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컴퓨터를 오래 본 날에는 눈이 무거울 수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운전할 때 평소보다 시야가 답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느낌은 비슷했습니다.
기존 안경을 쓰면 눈앞이 어수선하고, 안경을 벗으면 금방 눈이 피곤해졌습니다. 새로 맞춘 안경도 아니었고 렌즈에 갑작스러운 손상이 생긴 것도 아니어서 원인을 쉽게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안경을 써도 불편하고 벗어도 불편하니 검사보다 걱정이 먼저 커졌습니다.
MRI는 떠올렸지만 내 안경은 다시 보지 않았다
신경과에 가서 MRI를 찍어봐야 하는지, 안과에서 눈 상태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혼자 고민했습니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하고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면서,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만 계속 키웠습니다. 정작 매일 쓰고 있던 내 안경 도수는 다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고객에게는 증상만으로 원인을 정하지 말고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막상 내 눈이 불편해지자 나 역시 가장 걱정되는 상황부터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단골 고객님이 운영하는 안과를 찾아갔습니다.
먼저 아는 척 인사를 드리고 최근 한 달 동안 느꼈던 불편을 설명했습니다. 운전할 때 기존 안경을 쓰면 어지럽고, 벗으면 눈이 더 피곤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검사를 받고 나온 수치를 보면서도 바로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원장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안이에요.”
‘벌써?’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40대 초반인 내 눈에 노안이 시작됐을 가능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글씨를 팔을 뻗어 봐야 할 정도도 아니었고, 휴대전화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노안은 그보다 훨씬 분명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자동굴절검사 결과와 기존 안경 도수를 제대로 비교해볼 생각이 났습니다.
노안은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글씨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40대 초반에서 중반부터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이전보다 힘들어지고, 근거리 작업 뒤 눈의 피로가 먼저 두드러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검안협회는 노안이 일반적으로 40대 초반에서 중반에 눈에 띄기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미국 국립안연구소도 가까운 곳을 보기 어려워지는 변화와 함께 눈의 피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다만 안경을 쓰면 어지럽다는 증상만으로 노안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지러움과 시야 불편의 원인은 다양하므로, 내 경우에도 안과에서 눈 상태를 먼저 확인한 뒤 기존 안경과 현재 굴절 상태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10년 가까이 익숙했던 도수
기존 안경 도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오른쪽: S -1.00D / C -1.00D / AX 125
- 왼쪽: S -1.00D / C -0.50D / AX 25
오랫동안 별다른 문제 없이 사용한 도수였습니다. 익숙하게 지낸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최근의 피로가 안경 도수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뒤로 미뤘습니다.
검사 후 새 안경은 다음 도수로 변경했습니다.
- 오른쪽: S -0.50D / C -1.00D / AX 125
- 왼쪽: S -0.75D
기존보다 근시 교정량을 줄이는 방향이었습니다.
이 수치만 보고 40대 근시 사용자는 안경 도수를 약하게 해야 한다고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같은 나이라도 기존 도수와 시력, 주로 보는 거리, 운전 여부에 따라 필요한 처방은 달라집니다.
특히 운전할 때는 원거리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는지 반드시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덜 보였다
새 안경을 처음 썼을 때는 이전보다 원거리가 조금 덜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거의 10년 동안 비슷한 도수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작은 차이도 바로 느껴졌습니다. 눈이 편해질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처음부터 만족스럽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운전할 때 표지판이 어떻게 보이는지, 실내에서 사람 얼굴을 볼 때 불편하지 않은지, 컴퓨터와 휴대전화 앞에서는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한 달 동안 지켜봤습니다.
지금은 안경을 썼을 때의 어지러운 느낌이 이전보다 줄었습니다.
안경을 벗은 뒤에도 눈이 금방 지치던 느낌이 덜하고, 처음에 느꼈던 약간 부족한 듯한 원거리 선명도도 크게 의식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 한 달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적응 기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 달은 내가 실제 생활 속에서 변화를 확인한 시간일 뿐입니다.
고객의 “안경을 써도 불편해요”라는 말
이 일을 겪고 나서 고객이 안경원에 들어올 때 어떤 마음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객은 자신의 불편을 근시, 난시, 조절력처럼 구분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안경을 써도 이상해요.”
“벗으면 더 피곤해요.”
“혹시 눈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나도 똑같았습니다.
안경사라는 직업 때문에 내 변화를 더 빨리 알아차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같은 도수를 사용했다는 익숙함 때문에 기본적인 확인을 뒤로 미뤘습니다.
앞으로 40대 고객이 비슷한 불편을 말한다면 가까운 글씨가 흐린지만 묻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운전할 때와 컴퓨터 작업 뒤의 느낌이 다른지, 안경을 벗으면 가까운 곳은 오히려 편한지, 같은 도수를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를 먼저 들어볼 생각입니다.
불편이 갑자기 시작됐거나 통증과 뚜렷한 시야 변화가 함께 있다면 안경 도수보다 안과 확인이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노안이라고 답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안과에서 노안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바로 돋보기나 누진다초점안경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내 경우에는 기존 근시 도수를 조정한 단초점안경부터 사용해봤고, 당장의 불편은 상당 부분 줄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노안이라도 생활 조건이 다르면 선택도 달라집니다.
하루 종일 서류를 보는 사람은 근거리용 안경이 먼저 필요할 수 있고, 원거리와 근거리를 자주 오가는 사람은 누진다초점안경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기존 근시 정도와 작업 거리, 운전 빈도, 안경을 쓰고 벗는 습관도 함께 봐야 합니다.
작업 거리에 따라 돋보기와 누진다초점안경의 선택이 달라졌던 사례는 안경을 바꿔 쓰던 미술 선생님의 상담에서 다뤘습니다.
시력 확인과 안과 검사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시력검사는 얼마나 자주 받아야 하는지 정리한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피로
안경을 바꾼 뒤 모든 불편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잠이 부족하거나 컴퓨터를 오래 본 날에는 지금도 눈이 조금 무겁습니다. 그래서 원거리 도수를 다시 바꾸기보다는 컴퓨터와 근거리 작업에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렌즈를 시험해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떤 렌즈를 사용할지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니터까지의 거리와 하루 중 컴퓨터를 보는 시간, 운전할 때 필요한 시야를 다시 확인한 뒤 결정할 생각입니다.
한 달 전의 나는 MRI를 먼저 떠올렸고, 내 안경 도수는 나중에 봤습니다.
지금은 새 안경을 쓴 채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눈이 전보다 편해졌다는 사실도 다행이지만, 고객이 자신의 불편보다 걱정을 먼저 꺼내는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됐다는 점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